내 고향 곤지암

Photos 2008/01/22 23:13

나의 고향은 곤지암이다.
보통 곤지암이라고하면 어떤 암자가 있는줄 아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곤지암은 어떤 바위에서 유래한 지역이다.
물론 그 바위의 이름은 곤지바위.



원랜 굉장히 높고 큰 바위였다고 한다.
게다가 워낙 바위의 기가 세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날, 신립장군(임진왜란 때 딱총 왜군에 기마병으로 맞섰다가 대패한 장군)을 묻으러 곤지암으로 오는 행렬의
발걸음을 이 바위가 막았다고 한다.
그러자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어떤 선비가 " 네 이놈~~ !!!! 네놈이 뭐라고 장군의 가시는 길을 막느냐~!!"하고 호통을 치자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쩌러렁~ 치면서 바위를 둘로 쪼개 놓았고 그 덕에 신립장군을 묻을 수 있었다고..
그 후에 쪼개진 사이로 향나무가 자라 경관을 이루게 되었다.
뭐 대충 이런 전설을 가진 곤지바위.
초등학교 시절의 나에겐 신비함과 존경의 대상이였던 곤지바위.
나이 서른에 다시 가서 보니 참 초라하다.. ㅎㅎ;;



이 문방구는 "학우사"라는 곳이다.
이 문방구 아자씨가 참 약았던 기억이 난다.
뭘 잘 모르는 학생이 오면 더 비싸게 받고 그랬던 곳이다.
워낙에 오랬동안 장사를 해서 그런지 (내가 초등학생 때도 엄청 오래된 문방구였으니깐)
여기는 거의 보물창고다. 항상 탐났던 문방구. 학우사.



이곳은 내가 졸업한 곤지암 초등학교 (당시엔 곤지암 국민학교)
초등학교 시절은 행복했던 것 같다.
특별히 내가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지만
또 특별히 날 귀찮게 했던 친구들도 없었다. 그래서 당시엔 행복했었던 것 같다.
왼쪽에 보이는 나무를 올라갈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남는다.
저 낮은 곳을 못 올라가서 맨날 나무에 헤딩을 했었는데..
수돗가도 그대로 있다.
지금도 저 물 먹을 수 있나?

곤지암.

나에겐 아련한 추억의 고향이지만
어머니 아버지께는 고통의 지역이다.
곤지암 말만 꺼내면 화내신다.

지금은 엄청 도시화가 진행되서 예전의 좋았던 곳이 다 없어졌다.

벗나무가 500미터 펼쳐졌었던 길도 없어지고
예전 우리집 뒷마당의 자두나무 밭도 없어지고
개울물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으며
넓은 논사이를 가로지르던 시골길도 없고
울퉁불퉁 둑길도 없다.
저 멀리 보이던 거북이 머리처럼 생긴 산도 이제는 보이지 않아.
토끼 잡던 산은 이제 깍여져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으며
내가 산불냈었던 앞동네 산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역시 아파트가 들어서려는 듯.

나중에 나중에 내가 찾아갈 고향이 남아있긴 할까?
2008/01/22 23:13 2008/01/2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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