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기대를 갖고 봤던 영화 왕의 남자.
이 영화를 본 후의 내 만족감은 후에 내가 느낀 이 영화의 맹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다시 짚어 보건대 이 영화는 반쪽의 승리다.
승리한 반쪽은 예술의 힘과 그 힘으로 인해 고려해야할 사회 정화 기능에의 만족이다. 내가 영화예술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물론 외줄타기 광대 조차 아니지만 그래도 한때 공연예술을 했던 사람이고 또 기회가 된다면 계속하고 싶은 사람인지라 여전히 나는 예술의 역할에 많은 관심이 있다. 영화 왕의 남자는 그간 내가 해보고자 했던 예술의 역할과 의무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좋은 영화라 하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연산군은 마치 현대의 인터넷 찌질이들 마냥 영향력있는 누군가가 뭐라하면 그리로 따라가고 또 뭐라하면 저리로 따라가는 인생군상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었기에 얼마나 나는 만족스러웠는지 모른다.
허나! 그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내가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이 있었으니 그 부분은 이준기가 맡은 예쁜남자의 설정이다.
사실 영화를 보기 이전부터 예쁜남자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 예쁜남자를 이해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 부분 역시 "역시나"였고... . 영화는 주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평가또한 주관적이기에 나의 말 역시 주관적이다. 내 주관이 영화 왕의 남자에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동성애. 동성애를 난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남자인 내가 여자들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남자에게 느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 남자를 사랑한 두 남자의 이야기! 이 명제를 보고 내가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은 나도 영화 속 이준기에게 연정을 느낄 수 있겠다라는 것이였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기대를 가졌던 나에겐 너무나 처참했다.
이준기는 다만 예뻤을 뿐. 어떤 매력도 발산하지 못했다. 끌린다는건 얼굴만 보고 끌리는게 아니다. 그, 그녀의 행동 거지거지와 언사 하나하나와 알게모르게 풍기는 그 사람만의 향기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끌리는 것이다. 혹여 영화 속 이준기의 캐릭터가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에게 어필이 안되면 이미 동성애로서의 얘기는 물건너 간 것이다.
난 왕의 남자를 본 남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준기를 보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는가?
외모가 모든걸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특히 연(戀)을 말할 땐 그렇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한 수많은 남자들은 여성의 외모만을 보고 Good or Bad를 판단한다.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의 역할이 내가 판단하기로는 남자에게 여자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 이상의 의미는 없다. 즉, 영화 속 이준기는 남자들이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 정도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웬간한 여자들보다 여성적 매력이 가득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 연산군은 엄밀히 말해 동성애자가 아니다. 그는 평범한 이성애자이고 다만 이성에게 느끼는 매력을 동성인 영화속 이준기에게도 느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연산군은 영화속 이준기가 자신을 떠난다면 그 후엔 다시 여자를 사랑할 사람인 것이다. 동성을 사랑할 이유가 영화속에서 전혀 표현되지 않았기에 그렇다.
이 영화에 대한 논평이나 다른 평가를 볼 때 동성애를 다뤘다는 것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지만 내가 보기엔 왕의남자는 동성애를 다루지 못했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땐 여자가 갖지 못한 어떤 매력을 남자가 갖췄기 때문이지 여자 만큼 남자가 아름답거나 여성스럽기 때문이 아니므로 그렇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감독이 가진 외모지상주의 혹은 사랑에 관한 고정관념 (소위 남성적 매력과 여성적 매력의 융합반응이라는;)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쁜 것하고 사랑스러운 것하고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따라서 나는 왕의 남자를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본다.
예술의 영향과 역할에 대해서 성공,
동성애 표현의 실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