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투쟁 그리고 늦은 성과
死적인글
2006/01/10 20:45
우리학교 학생회관 옆쪽에 땅과 높이가 1.5미터 가량 차이가나는 베란다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학우들은 그것의 높이가 높지 않아 그 난간을 넘어다니곤 했다. 그냥 넘어다니는건 문제가 없었지만 다치는 일이 종종 생기곤 했다. 00년에 우리 효자손 동아리연합회는 학생회관3층 옆쪽에 계단을 만들어야한다고 학교측에 요구했었다.
그러나 그 밑에 난방스팀 파이프가 지나간다고 하여 학교에서는 그 일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린, 난방파이프에 해가 가지 않는 여러가지 방법을 학교에 제시했고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었다. 역시 번번히 무시당했다.
그 문제제기는 그 해에 끝나지 않았다. 후임 동아리연합회 성원들도 꾸준히 건의를 해왔고 결국 어느 동아리에서 그 옆 난간을 올라다닐 수 있는 나무 계단을 만들어 지난 여름까지 사용해왔다.
나무계단이란 것이 건물 외관에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
우리의 문제제기 및 건의가 거의 잊혀질 때쯤이 된 2006년 초. 오늘.
학교에서는 작은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 난간에 벽돌 계단을 쌓는 공사였다. 이봐. 공사하니까 되잖아. 그 때 학교에서 우리들에게 했던 말들은 거의 둘러댄게 맞잖아.
사실 나무 계단을 올리는 것도 힘든 일이였다. 학교에서는 학교기물 파손으로 징계를 내릴꺼라고 우리에게 겁도 줬었고 캐비넷이나 긴 의자 같은 걸 동아리마다 준다고하면서 달래기도 했었다. 나무 계단이 세워지던 날 교학처장이란 분이 학생회로 찾아와서 주도자가 누구냐느니 하며 화도 냈었다. 물론 당시엔 겁났다. 일종의 보신주의 같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었고.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약속의 힘이였다. 선거를 하면서 "하겠다"라고 말한 것을 하나의 보신주의로 "어쩔 수 없다"라는 말로 바꿀 수가 없었던 거다.
게다가 또다른 문제는 우리의 요구가 들어지지 않자 그 다음해 그그 다음해 그그그 다음해 동아리연합회들도 같은 요구를 학교에 했던거고 또, 또또, 또또또 묵살당했다는데 있다. 후배들이 우리를 원망하기도 했다. "왜 그런 요구를 학교에 해가지구 우리까지 힘들게해요오오오" 하면서 원망을 했고 우리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왜 우리가 저질러 버린 것일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공사가 마무리 되는날 페인트 들고 가서 새로 생긴 계단에다 써 넣어야지. "이종률, 전현주, 장보배, 손종수 찜"이라고.
그러나 소심한 나는 아마 작은 매직하나 들고가서 저어어 구석에 쓰게 될지도 모른다. 종수.
그러나 그 밑에 난방스팀 파이프가 지나간다고 하여 학교에서는 그 일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린, 난방파이프에 해가 가지 않는 여러가지 방법을 학교에 제시했고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었다. 역시 번번히 무시당했다.
그 문제제기는 그 해에 끝나지 않았다. 후임 동아리연합회 성원들도 꾸준히 건의를 해왔고 결국 어느 동아리에서 그 옆 난간을 올라다닐 수 있는 나무 계단을 만들어 지난 여름까지 사용해왔다.
나무계단이란 것이 건물 외관에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
우리의 문제제기 및 건의가 거의 잊혀질 때쯤이 된 2006년 초. 오늘.
학교에서는 작은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 난간에 벽돌 계단을 쌓는 공사였다. 이봐. 공사하니까 되잖아. 그 때 학교에서 우리들에게 했던 말들은 거의 둘러댄게 맞잖아.
사실 나무 계단을 올리는 것도 힘든 일이였다. 학교에서는 학교기물 파손으로 징계를 내릴꺼라고 우리에게 겁도 줬었고 캐비넷이나 긴 의자 같은 걸 동아리마다 준다고하면서 달래기도 했었다. 나무 계단이 세워지던 날 교학처장이란 분이 학생회로 찾아와서 주도자가 누구냐느니 하며 화도 냈었다. 물론 당시엔 겁났다. 일종의 보신주의 같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었고.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약속의 힘이였다. 선거를 하면서 "하겠다"라고 말한 것을 하나의 보신주의로 "어쩔 수 없다"라는 말로 바꿀 수가 없었던 거다.
게다가 또다른 문제는 우리의 요구가 들어지지 않자 그 다음해 그그 다음해 그그그 다음해 동아리연합회들도 같은 요구를 학교에 했던거고 또, 또또, 또또또 묵살당했다는데 있다. 후배들이 우리를 원망하기도 했다. "왜 그런 요구를 학교에 해가지구 우리까지 힘들게해요오오오" 하면서 원망을 했고 우리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왜 우리가 저질러 버린 것일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공사가 마무리 되는날 페인트 들고 가서 새로 생긴 계단에다 써 넣어야지. "이종률, 전현주, 장보배, 손종수 찜"이라고.
그러나 소심한 나는 아마 작은 매직하나 들고가서 저어어 구석에 쓰게 될지도 모른다. 종수.

